박영효
인물박영효(朴泳孝, 1861년 6월 12일 ~ 1939년 9월 21일)는 조선 경기도 광주유수 겸 수어사 직위를 지낸 조선 말기의 문신, 정치가, 사상가, 작가로 급진개화파의 일원이었지만 이후 변절하여 친일파가 된다. 그는 철종의 부마(사위)로 고종의 친척 매제가 되며 금릉위 상보국숭록대부에 올랐다. 갑신정변을 일으켰고 갑오개혁을 주도했으며 모두 실패해 도합 20여 년이 넘는 일본 망명 생활을 해야 했다. 1882년 도일(渡日) 중 배에서 고종의 명으로 제작된 '이응준 태극기' 중 4괘(卦)의 좌·우를 바꿔 재도안했고 이것이 태극기의 원형이 됐다. 1884년 김옥균, 홍영식, 윤치호, 서재필, 서광범 등 동문수학들과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일본에 망명했다가, 청일 전쟁에 승리한 일본을 등에 업고 귀국해 다시 갑오개혁을 주도했다.
- 출생지
- 조선 경기도 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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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마는 행복했을까?(79) 영혜옹주(永惠翁主)와 금릉위 박영효(朴泳孝) 영혜옹주(永惠翁主)는 철종의 딸로 어머니는 숙의범씨(淑儀范氏)이다. 금릉위(錦陵尉) 박영효(朴泳孝)의 본관은 반남(潘南, 贈判書公林宗派)이고 자(字)는 자순(子純)이며 호는 춘고(春皐), 필명은 현현거사(玄玄居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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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기의 유래와 역사 이응준, 박영효, 고종인데… 아마 1882년경에 고종이 신하들에게 여러국기 도안을 제시하고, 선택한 것이 태극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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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말세에 성령을 부어주시면 2 주후 2026년 6월 02일 “3분의 기적” 그 중에는 스무 살 청년 서재필과, 스물셋의 박영효, 스물다섯의 서광범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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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옥균, 서재필 등 갑신정변 주역들의 가족들이 겪은 처참한 최후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간 뒤, 정변의 주역인 김옥균, 홍영식, 박영교,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의 가족들은 모두 연좌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 (조선의 근대화 3) 개화파들의 눈을 띄워준 이동인 스님 이야기(3) 그런데 한양 도성 밖 봉원사는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서재필 등 비주류 양반자식 관료들이 암암리에 모여 조선의 개화를 꿈꾸는 비밀아지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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