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육
인물김육(金堉, 1580년 8월 23일(음력 7월 14일)~1658년 10월 1일(음력 9월 5일))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 실학자, 사상가, 작가, 정치가, 철학자이며, 효종·현종 연간에 대동법의 확대 시행을 주장, 추진하였으며 화폐(동전)의 보급에 힘썼다.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 회정당(晦靜堂),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1638년(인조 16) 충청도 관찰사에 재직 중 대동법을 제창 건의하였고, 수차(水車)를 만들어 보급하였으며, 전후복구 사업을 시도하였고, 《구황촬요》(救荒撮要)와 《벽온방》 등을 증보·재간행하였다. 인조 반정 직후 학행으로 천거되어 관직에 나갔다가 그 뒤 과거에 급제하여 음성현감, 성균관전적,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했다. 그 뒤 충청감사 재직 중 충청도 지역에서 시범으로 대동법을 실시하게 했으며, 호서대동법이 실시될 때 호조 판서로서 실무를 지휘한 이시방과 함께 대동법 시행의 주역으로 꼽힌다.
- 출생일
- 1580년
- 출생지
- 조선 경기도 가평군 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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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 대동법 김육 https://youtu.be/Mop-iqSzPZc
- 김육 https://www.youtube.com/watch?v=Mop-iqSzPZc&pp=ugUEEgJrbw%3D%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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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육(金堉)의 시 김육(金堉;1580~1658)의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 · 회정당(晦靜堂)이다. 1605년(선조 38)에 사마시에 합격해 성균관으로 들어갔고, 1609년
- (공신) 청성부원군 식암 김석주[문충공], 정경부인 전주이씨, 정경부인 창원황씨 -청풍김씨, 우의정- 강릉참봉 김흥우(金興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영의정 김육(金堉)이고, 아버지는 병조판서 김좌명(金佐明)이며, 어머니는 오위도총부(五衛都摠部) 도총관(都摠管) 신익성(申翊聖)의 딸이다
- *(문신) 청릉부원군 귀계 김좌명[충숙공], 정경부인 평산신씨 -청풍김씨- 김비(金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봉 김흥우(金興宇)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김육(金堉)이며, 어머니는 윤급(尹汲)의 딸이다. 1633년(인조 11) 사마시를 거쳐, 1644년 별시
- 상평통보 김육(金堉)이 소를 올려 말하기를, “우리나라가 일찍부터 전화(錢貨)를 사용하려고 하였으나 시행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나라 안에 모두 사용하도록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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