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개남
인물김개남(金開南, 1853년 9월 15일 ~ 1894년 12월 3일)은 1894년 동학 농민 선언의 지도자이자 혁명가로서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사람이다. 교과서 등에서는 전봉준, 손화중과 동학농민군 3대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다. 족보에 실린 이름은 영주(永疇), 어릴적 이름은 기선(琪先), 성인이 되어 기범(箕範), 본관은 도강(道康)이다. 동학에 입도한 후 동학의 교리에 따라 태평천국으로 밝은 이상적인 나라를 남쪽으로부터 연다는 뜻으로 호를 개남(開南)으로 정했다. 동학농민혁명기에는 김개남대접주, 개남장(開南丈) 또는 개남장군(開南將軍)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 직업
- 훈장, 정치인, 종교지도자
- 출생일
- 1853년 9월 15일
- 출생지
- 태인현 종송리 지금실 · (현 정읍시 산외면 지금실)
출처: 위키백과 · 더보기 →
블로그
- <새야.새야 파랑새야,녹두꽃에 앉지마라~.여기 나오는 녹두 장군은 전봉준이 아니라,김개남 장군이 었다.> (이 사진은 김개남 장군의 실물 사진이다.
- * 애국 노선 차이가 빚은 비극: 김개남과 임병찬의 경우 정읍 산외면 골짜기에 자리한 김개남 장군의 묘를 엊그제 폭염을 뚫고 답사했다. 전주의 우리 집에서 차로 40분 거리인 * 애국 노선 차이가 빚은 비극: 김개남과 임병찬의 경우 정읍 산외면 골짜기에 자리한 김개남 장군의 묘를 엊그제 폭염을 뚫고 답사했다.
- * 애국 노선 차이가 빚은 비극: 김개남과 임병찬의 경우 정읍 산외면 골짜기에 자리한 김개남 장군의 묘를 엊그제 폭염을 뚫고 답사했다. 전주의 우리 집에서 차로 40분 거리인 * 애국 노선 차이가 빚은 비극: 김개남과 임병찬의 경우 정읍 산외면 골짜기에 자리한 김개남 장군의 묘를 엊그제 폭염을 뚫고 답사했다.
- 전주 덕진공원에서 3장군을 만나 부끄러움을 느꼈네요... 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그리워한다 철 지나 씨앗 맺힌 연밥인 듯, 수운이 논학문 쓰고 검결(劍訣)을 지어 칼춤을 춘 남원 교룡산성의 선국사 은적암인 듯 #덕진공원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 남원의 교룡산성 안에 있는 선국사와 은적암터, 역사가 깊은 곳인데 너무 방치돼 있어 안타깝습니다... 복덕봉 밀덕봉아 산신 품은 봉우리야 최수운 너를 품고 백용성도 뒤따른 곳 김개남 크고 깊은 뜻 어느곳에 숨겼나 이곳이다 성안에 우물이 99개나 있어 민관군이 몸과 마음을 모아 호남곡창을
- 동학농민혁명의 잊혀진 혁명가, 김개남
- 북한산 백운대, 김개남 장군 길 만나러~ 불꽃같은 기개… 김개남 장군을 만나러 가는 길! 글 · 최석문(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사진 · 주민욱 기자 봄을 떠올리기에는 너무도 혼란스러운 3월이다.
- 또 다른 녹두장군, 김개남 김옥균 기사를 읽다가 김개남...??? 동학농민운동(1894)=전봉준 이것만 알던 나에게 가장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김개남 장군은 누구인가?
- 남도의동학농민혁명유적지 - 고흥의 동학농민혁명 김개남 뜻따라 고흥에 조련장 설치하고 군사훈련 ‘관민상화(官民相和)’정책으로 전주화약 체결 이후 농민군 철수 집강소 운영· 군사 조련장 설치해 2차 농민전쟁 준비 김개남 “군사 역량
- (증산도 道典 1:57) 나는 대세를 살피러 온 것이다 여산에서 안필성을 다시 만나심 1 필성이 종군한 김개남 부대는 전주를 떠나 청주를 향하여 북상하는 길에 여산(礪山)에서 잠시 머물러 쉬거늘2 이 때 필성이, 길 한쪽에 서서 바라보고 나는 대세를 살피러 온 것이다5 김개남 부대는 행군을 계속하여 진잠(鎭岑)을 지나 태전(太田) 유성장터에서 하루를 쉬니, 이는 다음날부터 청주성을 공략하기 위함이라.6 이튿날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