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키타 흐루쇼프
인물니키타 세르게예비치 흐루쇼프(1894년 4월 15일~1971년 9월 11일)는 소련의 군인, 정치인이다. 1953년 소련의 지도자였던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망하자 소련 공산당 제1서기로 등극했고, 1956년부터 1964년까지 소련의 여러 요직(要職)을 거쳤다. 국가원수 재임 초기에는 스탈린 격하 운동을 명령하고, 소련 우주 프로그램을 추진해 소련의 첨단 과학을 육성하는 일련의 성과를 거두었다. 자신의 정책이 성공했다고 판단한 후르쇼프는 자신감을 얻었고, 경제 성장을 촉진하면서도 시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여러가지 개혁을 야심차게 추진했으나 그가 시행한 정책은 시민들에게도 관료들에게도 인기가 없었으며, 결과적으로 대부분 실패하였다. 특히 그의 전문성 결여와 독선적인 행보는 소련 공산당의 민주집중제와 집단지도체제 원칙을 크게 훼손하며 기존 당직자들에게도 불만을 일으켰고, 결국 1964년 모든 권력에서 쫒겨나며 강제로 은퇴하게 되었다.
- 출생지
- 러시아 제국 쿠르스크현 칼리놉카
- 소속
- 붉은 군대
- 학력
- 전연방산업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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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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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레리 사블린 50주기 투철했으나 한편으로 말과 생각에 전혀 거침이 없는 성품이었던지라, 20대 초반인 1962년의 어느날 '노멘클라투라' - 부패한 당의 특권층을 숙청해야만 한다는 요지의 탄원서를 니키타 흐루쇼프
- 우크라이나 침공 _ 4월 영화 근본적인 문제는 우크라이나가 친서방과 친 러시아로 분열되었다는 겁니다. 1960년대 소련의 흐루쇼프 서기장은 우크라이나에게 돈바스 지역과 크림 지역을 행정구역에 편입시켰습니.....
- 쿠바 봉쇄, 중·러 불러들이는 자충수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자국 선박에 미국의 봉쇄를 뚫고 쿠바로 진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핵잠수함 6척이 호위하는 선박에는 미사일과 핵무기 부품들이 실려 있었다.
- 드 골의 기억 속 흐루쇼프 1960년, 1958년 드 골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개최를 노력한 4대 강대국 정상회담은 아이러니하게도, 회담 전 주에 발생한 U-2 소련 영공 격추 사건으로 파토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 후 다시금 흐루쇼프를 파리에서 접견하게 된 드 골은 그와 소련을 ' 우리를 종속하려는 미국이나 다
- [에스트라다] Я шагаю по Москве(나는 모스크바를 따라 걷는다) 영화에 메인 OST로 나온 곡으로,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러시아인들에 의해 불려지는 곡이다. 1964년은 니키타 흐루쇼프가 소련의 서기장으로 재직한 마지막 해인데, 이 흐루쇼프
- 1685) 유엔총회 연설 / 이도운 논설위원 / 문화일보 2017.9.18. 학살)를 이스라엘 감싸기에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960년 총회에서는 필리핀 대표가 “소련이 동유럽 시민들의 정치적 권리를 박탈했다”고 비판했는데, 이에 격분한 니키타 흐루쇼프
- [시대의 소음-광기의 시대를 지나온 겁쟁이로서의 삶] 예술가의 감성을 타고난 사람들이 그렇듯이 부서지기 쉬운 감성을 지닌 그는 레닌, 스탈린, 흐루쇼프(흐루시초프)의 시대를 살아오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 아마겟돈 레터 북리뷰 랭 출판 시그마북스 쿠바 미사일 위기때의 상황과 당대 카스트로, 케네디, 흐루쇼프 사이에 오고간 서신을 읽으며, 핵 전쟁의 결과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잠재적 가능성에 관해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