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와 나가쿠니
인물니와 나가쿠니(1834년 5월 22일 ~ 1904년 1월 15일)는 일본 에도 시대의 다이묘로, 니혼마쓰번의 10대 번주이다. 어릴적 이름은 호조(保蔵)이며, 관위는 종4위하, 사쿄노다이부(左京大夫), 시종(侍従)이다. 10대 번주 니와 나가토미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1858년, 아버지가 은거하자 번주 자리를 계승하였다. 선대로부터 이어진 에도 만 도미쓰(富津) 포대 경비를 맡았고, 1860년에는 교토 경비까지 맡은 데다가, 니혼마쓰에 큰 화재가 겹치면서 번의 재정은 고갈 상태였다.
- 직업
- 다이묘
- 출생일
- 1834년 5월 22일
- 소속
- 니혼마쓰 번
출처: 위키백과 · 더보기 →
블로그
- ka1557,01,06~ka1557,01,07 【분류】인사-임면(任免) ka1557,01,07(실록.명종12년,丁巳年,명(明)가정36年) /호조 판서 조사수가 사행가는 직을 사양했으나 허락하지 않다/ 辛酉(신유) : 신유 일에
- ka1556,12,29(실록.명종10년,乙卯年,명(明)가정<嘉靖>34年) 영의정 심연원, 左議政尙震(좌의정상진) : 좌의정 상진, 右議政尹漑(우의정윤개) : 우의정 윤개, 右贊成李浚慶(우찬성이준경) : 우찬성 이준경, 禮曹判書洪暹(예조판서홍섬) : 예조 판서 홍섬, 右參贊金明胤(우참찬김명윤) : 우참찬 김명윤, 兵曹參判金光軫(병조참판김광진) : 병조 참판 김광진, 戶曹參判吳謙等問安(호조참판오겸등문안) : 호조 참판 오겸 등이 문안드리고
- ka1554,11,22~ka1554,11,23 ka1554,11,22(실록.명종9년,甲寅年,명(明)가정33年) /공조 판서 홍섬 등에게 성균관에서 제술하지 못한 유생들을 시험 보이게 명하다/ 己未(기미) : 기미 일에 命工曹判書洪暹 (명공조판서홍섬) : 공조 판서 홍섬· 吏曹判書李浚慶(리조판서이준경) : 이조 판서 이준경· 戶曹判書趙士秀往成均館(호조판서조사수왕성균관) : 호조 판서 조사수에게 성균관에 가서, 試二十日未及來製儒生
- 박침부인 밀산박씨 묘 풍수. 밀양박씨 규정공파. 완주지역 (1343~1381) 밀양 박씨의 시조는 박혁거세이며, 시조로부터 45세(世)인 박현(朴鉉)을 규정공파로 하여 중시조로 삼는다. 2세 박문유(朴文有)는 경주판관, 고려 말에 판도 판서 판서가 박침(朴忱)을 낳았는데, 증조부 박침은 우리 조정에 들어와서 우리 태조를 섬겨 공로가 있었기에 이름은 원종 공신의 녹권(錄券)에 실리고, 벼슬은 호조 전서에 이르렀다.
- 형조판서 박사경 묘 풍수. 밀양 박씨 중흥조 1404년(태종 4)> 밀양 박씨의 시조는 박혁거세이며, 시조로부터 45세(世)인 박현(朴鉉)을 규정공파로 하여 중시조로 삼는다. 2세 박문유(朴文有)는 경주판관, 고려 말에 판도 판서 판서가 박침(朴忱)을 낳았는데, 박침은 우리 조정에 들어와서 우리 태조를 섬겨 공로가 있었기에 이름은 원종 공신의 녹권(錄券)에 실리고, 벼슬은 호조 전서에 이르렀다.
- 상평통보 상평통보(常平通寶) 인조(仁祖) 11년(1633)에 상평청(常平廳)으로 하여금 돈을 주조하게 하면서 그 이름을 상평통보(常平通寶)로 하였는데, 이는 호조 판서 김기종(金起宗)의 말을
- 청성잡기(靑城雜記).70 탐욕스럽던 김상로(金尙魯) 집안의 말로 청성잡기.70 청성잡기 제3권 성언(醒言) 탐욕스럽던 김상로(金尙魯) 집안의 말로 판서(判書) 원경하(元景夏)1가 김상로의 탐욕스러움을 미워하여 일찍이 혼잣말을 하며 천신(天神)과 하고 답하기를, “호조(戶曹)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였다. 또 묻기를, “분명 그러합니까?” 하고 답하기를, “반드시 그러할 것이니라.” 하였다.
- 6조와 산하 기관 육조에는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가 있다. 광화문 밖은 ‘6조거리’라고 불리던 곳으로 왼쪽에는 병조, 공조, 형조 건물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이조, 호조, 예조의 건물이 있었다.
- ◉세종 3년 1421년 8월 ◉세종 3년 1421년 8월 1일 ▷일식하다 ▷광효전에 나아가 초하루 제사를 거행하다 ▷대간·형조·호조·의금부에 명하여 박인간·김계현 등을 국문하다 대간(臺諫)과 형조 및 호조 판서
- 한반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재상, 조선시대 버전 애국페이 황희 정승 이야기 태종 즉위 전 까지는 관직 생활이 순탄치 못했던 황희는 태종이 즉위하면서 태종과 가장 가까운 지신사라는 관직을 역임하며 능력을 인정으며 이 후 이조, 호조, 형조, 병조, 공조, 예조 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