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설
인물한규설(韓圭卨, 1856년 2월 29일 ~ 1930년 9월 22일)은 조선 사복시 장위사 등을 거쳐 대한제국 의정부 참정대신 겸 대리집정공 직책을 지낸 구한말 시대의 무관 겸 정치가이다. 호는 강석(江石), 자는 순우(舜佑)이며 본관은 청주이다. 1880년에 음서로써 문관 하급 관료 직에 천거되어 1884년에 무과 급제한 이후 사복시 장위사 시절 동료 사복시 주부 이기동, 홍문관 부수찬 이도재, 성균관 예하 강독관 신태유, 어윤적, 이병무, 이재극 등과 함께 갑신정변 진압 관련 작전에 참여하였다. 갑신정변 진압군 간부였던 한규직은 그의 친형이다.
- 출생지
- 조선 한성부
- 학력
- 1884년 무과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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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제국 망국과정과 저항 내각의 참정대신(내각수반) 한규설(韓圭卨)이 반대했으나 을사오적(乙巳五賊)이 매국에 가담했다. 일본은 이 늑약을 한일협상조약(韓日協商條約)이라 칭한다.
- [녹야정(綠野亭) 가는 길] / 장교동 한규설 가옥, 명원박물관 내에서 운치 있는 정원과 함께 한국의 전통미를 느낄 수 있는 곳 K*힐링코스 안내 · 총거리 : 1.2km (산림코스 270m) · 산림코스 : 목재계단 244단, 야자매트 125m · 소요시간 : 25분 내외 장교동 한규설 가옥(長橋洞 韓圭卨
- NO. 1257 乙巳勒約(을사늑약) 斷乎(단호)하게 反對(반대) 의사를 밝힌 韓圭卨(한규설)은 日本軍(일본군)에 依하여 끌려나갔다. “오늘 期必(기필)코 署名(서명)하여야 할 것이오.” 이 議政府(의정부) 會議(회의)에 參席(참석)하였던 大臣(대신)은 閔泳綺(민영기), 朴齊純(박제순), 李完用,(이완용), 李根澤(이근택), 李址鎔(이지용), 李夏榮(이하영), 한규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