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우언라이
인물저우언라이(周恩來, 1898년 3월 5일 ~ 1976년 1월 8일)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혁명가 및 정치인 겸 외교관이다. 제1대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총리 및 중공 대륙 본토 과도정부수반 권한대행 등을 지냈다. 원래 처음에는 중국국민당(1923년~1927년)에 입당했으나 4년이 지나 탈당하고, 1927년부터 중국 공산주의 혁명에 투신했으며, 국공내전에서 중화 소비에트 공화국을 이끌었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에 참여해 1976년 사망할 때까지 중화인민공화국 총리로 재임했으며 1958년까지 외교부장을 겸했다. 이른바 1949년 당시 소련의 총리이자 최고서기장이던 스탈린 치하에서부터 중공 본토의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한 당시의 1949년 10월부터 1976년 1월 8일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의 초대 국무원 총리로 있었는데, 지난 날 한때 각각 중공의 부총리로 있던 린뱌오와 덩샤오핑이 각기 총리 권한 대행을 잠시 맡은 적도 있었지만, 사실상 저우언라이는 마오쩌둥 곁에서 중공의 종신 총리로 활동하였다. 1949년 10월 1일부터 1958년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의 초대 외교부장 직에 있었고, 1954년 9월 27일부터는 마오쩌둥으로부터 중국공산당 인민정치협상회의의 주석직을 넘겨받아 1976년 1월 8일에 사망할 때까지 재임하였다.
- 출생지
- 청나라 장쑤성 화이안
- 학력
- 중화인민공화국 난카이 대학 중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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