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조선)
인물중종(中宗, 1488년 4월 25일 ( 음력 3월 5일 ) ~ 1544년 12월 9일 ( 음력 11월 15일 ) )은 조선의 제11대 국왕(재위: 1506년 ~ 1544년)이다. 휘는 역(懌),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낙천(樂天)이며, 성종의 여덟째 아들이자 적차남으로, 어머니는 정현왕후 윤씨이다. 이복 형인 연산군이 반정으로 폐위되자 박원종, 성희안 등 반정공신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중 훈구 공신과 사림의 갈등으로 정쟁이 심화되었으며, 이로 인해 사화와 옥사, 저주와 주술, 익명서 투서, 무고 등의 궁중 암투가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삼포왜란이 발생하였으며, 남쪽의 왜구와 북쪽의 여진족의 침탈로 인해 발생하는 국방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임시 기구인 비변사를 설치하였다.
- 출생일
- (음력)
- 출생지
- 조선 한성부 경복궁 교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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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임금 11대 왕 중종 가계도 조선 11대 왕 중종"中宗"은 1488년 4월 16일(음력 3월 5일) "성종(9대 왕)"의 2남으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정현왕후 윤씨", 초명은 "이역"이며 후에 "진성대군"에 "성종"이 1494년 세상을 떠나자 "폐비 윤씨"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 "연산군"이 19살의 나이에 조선 10대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 영동 가볼 만한 곳 송담재//초강과 푸른 들판을 품은 문화 유적 탐사 시대 사당으로 율재 정경 선생을 모시고 있고 후손들이 세웠습니다. = 율재 정경 선생은 조선 중종 때 문무 양과에 급제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고 청렴결백하여 그 이름이 알려지신 분입니다 . = 임진왜란으로 건물이 무너져 조선 정조 때 다시 지었으며 1970년대 와서는 처마를 아름답게 단장하였습니다.
- 영주 우리나라 최초 소수 서원 창시자 주세붕이 세운 풍기 향교 맑은 후 흐림 헤저드의 한마디 영주 풍기 향교는 유서 깊은 향교로 고즈넉한 풍경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 영주 우리나라 최초 소수 서원 창시자 주세붕이 세운 풍기 향교 = 향교는 조선 시대 공립 교육기관으로 건립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조선 전기로 추정하고 있으며, 1541년 조선 중종 때 풍기 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이 향교 건물이 퇴락하고 동, 서재와 강당이 없는
- 조선 예종~중종 가계도와 중요 사건 정리 이번 시간에는 조선 예종에서 중종까지 가계도를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조선 왕과 가계도를 따지자면 왕과 왕비, 계비, 그 외 배우자(후궁) 등을 다루게 되면 너무 많아 복잡하여 여기서는 우리가 역사 시간에 언급되는 것 위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세조의 장남 의경세자가 19세의 젊
- [경북 영주]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 소수서원의 500년 기록을 볼 수 있는 곳, 소수박물관 ─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 소수서원의 500년 기록을 볼 수 있는 곳 ─ 소수박물관 ‘소수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 옆에 자리 잡은 부속 박물관이다. 중종 당시 풍기군수인 주세붕이 고려 말 성리학자 안향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묘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 밀양 모선정(慕先亭) - 조선 중기 모선재 박수견이 모친상 때 평생 시묘살이를 하던 곳에 세운 정자^^ 밀양 모선정(慕先亭)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초동로 398-13(신호리 220) * 조선 중종 학행이 높았던 모선재 박수견이 모친상 때 시묘살이를 하던 곳에 세운 정자^^ 밀양 모선정(慕先亭)은 조선 중종 때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문하로 학행이 높았던 모선재(慕先裁) 박수견(朴守堅) 선생이 모친상을 당하여 3년간의 시묘(侍墓)를 마친 후에도
- 학포집 학포집 '학포집(學圃集 또는 鶴圃集)'은 조선시대의 여러 학자 및 문인의 시문집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조선 중기 문신이자 화가인 양팽손의 유고집과 조선 후기 학자 정훤의 문집 등이 대표적이다 주요 학포집 종류 □ 양팽손의 학포집 (學圃集) 조선 중기 중종 때의 문장가이자 호남 화단의 선구자인 학포 양팽손(1488~1545)의 시문집이다.
- 명나라 사신 싸가지 없다고 실록에 써놨던 일화 조선 국왕 이역(중종 본명)은 참 좋은 사람이었고 어쩌고 저쩌고.... 유교국가 조선에서 신하가 왕의 본명을 입에 담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무례한 일이었다 당황한 송세형은 중종의 이름을 묵음처리한채 건너뛰고 편지를 읽었다 "조선 국왕.. ..
- 영월 장릉- 조용히 거닐기 좋은.. 영월 장릉 조선 제 6대 단종의 능입니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3년만에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선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났다가, 단종복위운동이 실패한 뒤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장릉은 중종 11년 암장지를 찾아 봉분을 갖추었고 숙종 24년 묘호를 단종으로 복위, 능호를 장릉으로 복릉하였고 선조 13년 상석과 표석, 장명등, 망주석을 세워 능역을 조성하였다고
- 조선의 힘으로 일본군에 반격하여 밀고 내려온 함경도 지역 : 북관대첩비의 증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https://encyclopedia.aks.ac.kr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이라는 이름을 우리 조상들이 역사적 사건, 곧 16세기말 -조선-일본 전쟁에 붙인 의미론을 제론해 보아야 할 때다. 16세기 초 1510년(중종 5년) 일어난 섬포왜란, 곧 부산포, 제포(진해), 염포(울산)의 규모와 명분의 큰 확대를 보였다는 것이다
뉴스
- 함양 남계서원, 세계유산 등재 7년... 과거를 넘어 미래를 잇다 우리나라 두 번째 사액서원 남계서원의 역사는 조선 중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552년(명종 7) 개암 강익이 함양군수의 지원을 받아 조선 성리학의 대표 학자인 일두 정여창(1450
- 빗속 '왕릉 산책'에서 생긴 퇴직 부부의 버킷리스트 세 왕비를 두고 홀로 누운 중종 이곳은 조선 9대 성종과 세 번째 왕비 정현왕후의 능인 '선릉', 그리고 11대 중종의 능인 '정릉'이 함께 있는 곳이다.
- 3대가 모두 으뜸가는 학자로, 이 고택에 깃든 이야기 사산은 조선 중종 때 진사를 지낸 함평이씨 순지(舜枝)가 정착한 뒤 자작일촌을 이뤘다고 전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엔 사산(士山)으로 표기했다. '사정뫼'로도 불렸다.
- 베트남 갈 필요 없네, 거창에서 백두대간 기운 받으세요 그러나 조선 중종 38년(1543년), 퇴계 이황이 빼어난 풍광을 접한 뒤 "이처럼 아름다운 절경에 근심이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이 곳에 대한 시를 짓고, '빼어난 경치를
- 500년 넘게 같은 방에서 제삿밥 먹는 두 선비의 의리 조그만 표지석이 정암 조광조 초장지(初葬地)가 이 동네였다고 일러준다,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로 사약을 받고 죽은 정암의 시신을 벗 양팽손이 거두어 장사 지내고, 서원 세워 억울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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