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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알면서도 은폐"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연합뉴스 자료사진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제공]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발생한 조선인 학살 사실을 일본 정부가 알고도 은폐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간토대지진 연구자 고토 아마네 씨는 최근 새로 발견된 당시 공문서를 검증한 결과 조선인 학살을 국가가 자세히 조사했지만 범인 검거와 처벌을 최대한 제한하는 방식으로 은폐했다고 밝혔습니다
- 조선인 학살 현장에 무용가들이 모인 이유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이 벌어진 도쿄 아라카와 강변에서 9월 29일 추모공연이 열렸다. 아라카와 일대는 1923년 간토대지진 직후 유언비어가 확산되면서 조선인 학살이 벌어진 곳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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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지진, 조선인 170명 학살 알고도 가해자 거의 안 잡았다”
일본 당국이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건을 조사해 다수의 희생자를 파악하고도 가해자 검거·처벌을 극도로 제한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은폐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마이니치신문은 지난 6일 자에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연구자 고토 아마네(後藤周)가 당시 일본 정부 공문서를 분석한 결과라며 이같이 보도했다.마이니치에 따르면 고토가 분석한 핵심 자료는 ‘선고비수
- 강제동원 조선인 도주 막으려...일 전국서 '산업위안소' 39곳 확인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가 투입된 일본 내 군수 산업시설 인근에 이른바 '산업위안소'가 최소 39곳 운영됐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했습니다
- 강제동원 조선인 도주 막으려‥일본서 '산업위안소' 39곳 운영 확인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가 투입된 일본 내 군수 산업시설 인근에 이른바 '산업위안소' 30여 곳이 운영됐다고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현지시간 12일
- 일제가 조선인 주머니를 노린 집요한 수탈법 중일전쟁(1937년)에 이어 태평양 전쟁(1941년)이 발발하자 일제는 전쟁 자금 조달과 군수 산업 지원에 금융 역량을 총동원했다. 본토에 '전시금융금고'를 설치(1942년)하고, 조선은행과 조선식산은행이 업무를 대리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전시금융금고는 조선에 진출한 군수회사에 거액의
-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알고도 은폐?…일본 공문서 분석서 드러난 실태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에서 발생한 조선인 학살과 관련해 일본 당국이 피해 실태를 조사하고도 가해자 처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사실상 은폐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 "강제동원 조선인 도주 막으려 '산업위안소' 권장…日전국 39곳 확인"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에 강제동원 된 조선인들이 일하던 일본 군수 산업시설에 '산업위안소(기업위안소)'가 최소 39곳이나 있었다고 12일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했다. 신문은 도노무라 마사루(外村大)...
- "日,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범인 검거 제한 등 방식으로 은폐" 1923년 일본 간토(関東)대지진 당시 발생한 조선인 학살은 범인 검거를 가능한 자제하고, 최대한 재판을 하지 않는 형식으로 은폐됐다고 12일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연구자...
- "순사 절반이 조선인…밀고가 일상" 86세 사미자 친일파 폭로 배우 사미자(86)와 남편 김관수(90) 부부가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파와 밀고에 얽힌 생생한 기억을 털어놨다. 사미자는 최근 유튜브 채널 '오미자 말고 사미자'에 올린 영상에서 "일본 순사의 절반 이상은 조선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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