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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수 박사의 조선왕릉 이야기] 28. 조선왕릉 휘릉
장렬왕후의 생애와 예송논쟁으로 본 조선 왕실 정치사의 이면 무자식 왕비의 굴곡진 삶과 풍수가 전하는 휘릉의 역사적 의미 휘릉은 제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莊烈王后)의 단독능이다. 인조 16년 14세에 왕비로 책봉되어 숙종 14년 1688년 8월 26일 창경궁 내반원에서 65세로 소생 없이 승하하였다. 그해 12월 16일 동구릉에 모셔졌다.
blog.naver.com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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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05 16 동구릉 숲길 개방 6 휘릉에서 원릉까지의 비밀의 숲길
장렬왕후는 인조, 효종, 현종, 숙종에 이르기까지 4대의 왕을 거치며 왕실의 최고 어른으로 지냈습니다. 인조의 두번째 부인이었는데 인조 16년에 간택되었으니 당시 인조는 44세, 장렬왕후는 15세였다.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인조 44세면 자식을 열도 더 낳았을 나이인데....
blog.naver.com · 2026.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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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 조선총독부의 전통 훼손지 : 서삼릉과 태실 권력의 여러 시기의 파괴 현장, 올바로 복원해야
효릉(조선 인종릉), 희릉(중종 제 2 계비 장경왕후 윤씨, 인종 낳다가 별세), 예릉(조선 철종릉)의 세 왕릉과 의령원(영조 첫 손자, 사도세자 첫 아들 의소세손의 원)과 효창원( 정조 아들 문효세자의 원)이 각각 서울 아현동과 효창공원 지역에서 일본군 주둔으로 이전된 상하 원과 소경원(인조 맡아들 소현세자 단독 원)의 3릉 3원이 위치할 뿐만이 아니라 전국에
blog.naver.com · 2026.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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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붕당정치 2
그리고 인조-효종 때는 서인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종 때는 살아남은 남인들과 서인들이 싸움을 했는데 바로 예송 논쟁입니다. 현종 서인 남인 1차 1년 3년 2차 9개월 1년 위에 표처럼 인조의 계비 자의대비가 입을 상복을 결정하는 것으로 싸움을 했는데 효종이 죽고 나서 서인은 효종이 자의대비의 둘째 이복아들이니까
blog.naver.com · 2018.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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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렬왕후(莊烈王后) 조씨의 지문 - 인조의 비
지문(誌文)에 이르기를,“삼가 생각건대 우리 장렬 왕후(莊烈王后)는 인조 대왕(仁祖大王)의 계비(繼妃)이다.
blog.naver.com · 2010.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