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목왕후
인물인목왕후 김씨(仁穆王后 金氏, 1584년 12월 5일 ( 음력 11월 14일 ) ~ 1632년 8월 3일 ( 음력 6월 28일 ) )는 조선 선조(宣祖)의 계비이자, 정명공주, 영창대군의 어머니이다. 본관은 연안(延安)로, 선조의 계비(繼妃)이며, 의인왕후가 승하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선조와의 사이에서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을 낳았다. 광해군 즉위 후 계축옥사에 연루되어 아버지 연안부원군 김제남이 사사되고 아들 영창대군이 살해되었으며, 오빠와 남동생, 형부가 옥사에 연루되어 전부 처형되면서 멸문의 화를 당했다. 이 일로 인해 인목왕후는 딸 정명공주와 함께 경운궁 석어당에 유폐되었다.
- 출생일
- (양력)
- 출생지
- 조선 한성부 반송방 사저
출처: 위키백과 · 더보기 →
블로그
- 구리 동구릉의 목릉이 누구의 능인지와 공간 배치에 대해 설명하시오. 서론: 목릉의 개요와 피장자 (약 1분) "구리 동구릉에 위치한 목릉(穆陵)은 조선 제14대 선조(宣祖)와 첫 번째 왕비 의인왕후 박씨, 두 번째 왕비 인목왕후 김씨를 모신 능역입니다
- 조선왕릉을 찾아서(22) _ 구리 동구릉-목릉 조선 제14대 선조, 의인왕후 박씨, 인목왕후 김씨의 능
- 60년 만에 다시 찾은 구리 동구릉 현덕황후 능 건원릉 : 조선 1대 태조의 능 건원릉 : 태조 건원릉 : 태조 건원릉 : 태조 목릉은 갈 수가 없어 당겨 봅니다 선조와 첫 번째 왕비 의인왕후 박씨 두 번째 왕비 인목왕후
- 조선 선조의 아들 영창대군 묘 광해군 영창대군(1606~1614) 조선 선조와 인목왕후 사이에 태어난 아들 대동법을 시행한 광해군을 공부하다가 영창대군이 나오더라고요. 광해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영창대군.
- 영원산성 가는 길(20260609) 금대리 김천석 김군석 피화유적비. 1613년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 조카 2명은 머리를 깎고 동자승으로 영원사에 숨어실다가, 10년 후 인조반정으로 돌아왔다.
- 출발! 2026 원주역사문화트레킹(0328) 코스는 관동대로가 지나는 원주의 길목 대송치 에서 을미의병봉기기념탑~ 선조계비 인목왕후 부친 김제남 신도비 ~ 천년 폐사지 흥법사지~ 중천 김충렬 박사.......
- 七言詩 이 한시(漢時)는 늙은 소(인목왕후 자신)의 고달품과 그것을 바라보는 주인(광해군)의 애처로운 마음을 자신의 처지에 비유하고 있다. 仁穆王后御筆
- 조선왕비실록 원경왕후 민씨 권력을 다 쥐고도 불심으로 불행을 막으려 했던 _ 정의왕후 윤씨 얼음 미인의 얼음 인생 그리고 비참한 최후 _ 인수대비 한씨 환난과 복수로 점철된 한 맺힌 세월 _ 인목왕후
- 인목왕후, 인조반정으로 다시 일어서다 인목왕후, 인조반정으로 다시 일어서다 선조의 왕비 의인왕후가 승하한 후에 그 사이에서 소생이 없어 적장자 출산을 바라는 마음에 계비를 간택하였는데 그게 바로 인목왕후입니다.그렇게
- 14대 선조, 의인왕후, 인목왕후 (목릉-동구릉) 명종은 7명의 부인을 두었으나 인순왕후에게서 겨우 아들 하나 달랑 얻었다. 아들 순회세자마저 12세로 요절하자, 후대를 이을 맥이 끊어졌다. 결국 중종의 아홉째 아들 덕흥군의 셋째 하성군이 왕위를 이어받았다. 후궁에게서 난 서얼 출신 혈족이 왕위를 잇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