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첨
인물이이첨(李爾瞻, 1560년 ~ 1623년 3월 14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외척이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이다.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득여(得與), 호는 관송(觀松)· 쌍리(雙里)이다. 효행으로 광릉참봉에 제수되었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터지자 도망치지 않고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맞섰다. 1594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다시 1598년(선조 31) 황해·평안 순검해운 암행어사로 다녀왔다.1599년 이조정랑이 되고, 북인이었다가 북인이 대북, 소북으로 나뉠 때는 대북에 가담했으며, 대북의 지도자였다.
- 직업
- 문관
- 출생지
- 조선 충청도 음성군
- 학력
- 1594년 별시문과에 을과 급제 · 1608년 문과 중시(重試)에 장원 급제
출처: 위키백과 · 더보기 →
블로그
- 다양한지압ㆍ침자리 가로선: 양쪽 귀의 가장 높은 곳(이첨, auricular apex)을 머리 위로 곧게 연결한 선 세로선: 코끝에서 머리 정중앙을 지나 뒷목으로 넘어가는 선 만나는 점: 이 두 선이
- 2027 수능특강_ 이첨, <응계설> 2027 수능특강_ 이첨, ■ 이첨, 해제 이 글은 사냥용 매를 담당하는 '음방'의 폐지애 관한 글쓴이의 생각을 담고 있는 글로, 백성을 돌보지 않는 임금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 「응계설」 주제 분석 해석, 이첨 고전 수필 해설 줄거리 요약 길잡이 미물의 울음을 통해 비로소 돌아보는 백성을 향한 참된 사랑 백성을 돌보지 않는 임금에 대한 비판, 이첨 고전 수필 「응계설」 해석 이 작품은 사냥용 매의 먹이가 될 뻔했던 닭의
- -1-광해군의 서글픈 최후 그러나 내가 보기에 광해군이 실각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왕위에 오르도록 큰 역할을 했던 이 이첨, 유 희분을 필두로 한 대북파가 장기 집권하면서 다른 정파는 일체 용납도 안 했을뿐더러 이 이첨은 유능했었는지는 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