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겸
인물이자겸(李資謙, 1050년 ~ 1127년 1월 19일(1126년 음력 12월 5일 ))은 고려시대 중기의 문신이자 정치인, 섭정이자 시인이었다. 권신(權臣)이자 척신(戚臣)으로, 예종과 인종의 장인인 동시에 인종의 외조부이기도 하다. 예종이 죽자 외손자인 인종을 추대하였으며, 왕위를 찬탈하려던 왕실의 친인척을 숙청하였다. 외손자인 인종이 즉위하자 자신의 두 딸이자 이모가 되는 폐비 이씨, 폐비 이씨 자매를 외손자인 인종에게 시집보내 권력을 누렸으나 뒤에 인종을 독살하려다가 도리어 인종에 의해 제거되었다. 1126년 이자겸의 난을 일으켜 반대파 인사들을 숙청하고 권력을 장악하였으나, 인종이 회유한 그의 사돈 척준경 등에 의해 제거되었다.
- 출생일
- 10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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