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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김옥균의 아르카디아 381화 [서기 1537년 4월에 생긴 일] 이미 권력은 권지국사(權知國事·명이 왕을 정식으로 책봉하기 전 임시로 나라의 일을 수행하는) 벼슬아치 이성계(李成桂)가 장악하고 있었죠. 「고려 배신 이인임(李仁任)의 후손 이모(李某)가 나쁜 짓을 하므로 이를 상제(上帝)에게 고하라.」
- 위화도회군에서 우왕이 최영을 자기 옆에 둔 이유는 왕자의 난 때문? - 서로 대비되는 위화도 회군과 왕자의 난 - ‘요동 공격’을 앞두고 전방군의 쿠데타, 위화도 회군 중앙군의 쿠데타, 왕자의 난 상호 대비 우선 제목이 무슨 말인가 하니, 미래에 이성계 애초 최영을 시켜 당시 실세 이인임 일파(염흥방,임견미,도길부)를 숙청시키는, 중앙에서 친위구데타를 본인이 성공시켰.......
- 고려멸망 특히 우왕 때 권문 세족들의 토지 겸병이 확대되자 최영이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 세력의 지원으로 이인임 일파를 축출하고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개혁의 방향을 둘러싸고 최영과 이성계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였다.
- 4불가론과 이성계-조민수의 위화도회군 4불가론과 이성계-조민수의 위화도회군 기록에 따르면 이성계는 비록 시골 출신의 무장이었지만 뛰어난 활 솜씨가 으뜸이었다고 합니다. 처음 이성계가 넘어야 할 산은 이인임 등의 일파였습니다. 결국 그는 최영과 손을 잡고 1388년 이인임을 몰아내고 문하시중 자리에 올랐습니다.
- 고려말 권문세족의 횡포와 최영-이성계의 등장 그러다 훗날 이성계 일파가 우왕이 진짜 왕 씨가 아니라 하여 폐위시키고 창왕을 옹립하는 명분으로 삼았습니다. 우왕의 즉위에는 이인임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러나 10세의 소년이었던 우왕은 이인임 일파, 염흥방, 임견미 등의 횡포를 막기에는 부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