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초등한국사 공부법 102] 일제 강점기의 시작 - 을사늑약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대비)
[초등한국사 공부법 102] 일제 강점기의 시작 - 을사늑약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대비) 이전 포스팅들에서 조선 후기에 등장한 세도 정치, 흥선 대원군, 그리고 여러 나라들의 조선에 대한제국(구 조선)과 일본은 '을사늑약' 이라는 조약을 체결했고요. 을사늑약의 체결로 우리나라(대한제국)는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가.......
- 망국의 몇 가지 풍경 을사늑약 국제정세 깜깜한 고종, 러일전쟁 후 미국 믿다 발등 찍혀 일본은 러일전쟁 때 외교도 전투처럼 임했다. 개전 전부터 강화회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했다. 미국과 사전 거래하고 한국을 완벽하게 봉쇄했다. 고종이 열강이 도울 것이란 환상에 젖어 있는 동안 일본은 냉정하게 영국
- 을사늑약 치욕의 장소 - 중명전 덕수궁 중명전(重明殿) 국가문화유산 - 사적(구 사적 제124호, 덕수궁 일원에 포함) 중명전(重眀殿)의 ‘중명’은 ‘광명이 계속 이어져 그치지 않다’라는 뜻으로, 1897년 황실 도서관으로 지어진 후 수옥헌(漱玉軒)이라고 불렸다. 1904년(광무 8) 대화재로 고종이 이곳을 임시 거처
- NO. 1257 乙巳勒約(을사늑약) “이 條約(조약)에 贊成(찬성)하면 逆賊(역적)이 되오.” 斷乎(단호)하게 反對(반대) 의사를 밝힌 韓圭卨(한규설)은 日本軍(일본군)에 依하여 끌려나갔다. “오늘 期必(기필)코 署名(서명)하여야 할 것이오.” 이 議政府(의정부) 會議(회의)에 參席(참석)하였던 大臣(대신)은 閔泳綺(민영
- <을사오적>강제로 체결된 ‘을사늑약乙巳勒約’ 강제로 체결된 ‘을사늑약乙巳勒約’ [사진으로보는역사] 사실은 순간순간 놓치기 쉽다. 기억으로 붙잡아도 망각의 강으로 스러져간다. 사진은 사실을 붙잡아 두는 훌륭한 도구다.
-
[초등한국사 공부법 104] 나라를 지키려는 노력 - 헤이그 특사와 항일 의병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대비)
104] 나라를 지키려 노력 - 헤이그 특사와 항일 의병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대비) 이전 포스팅에서 일본의 강압에 의해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구 조선)과 일본은 '을사늑약
- 을사늑약 체결의 주인공, 박제순 을사늑약 체결 당사자 박제순 을사조약 당시 외부대신이었던 박제순은 1883년에 별시문과에 급제한 인물로, 초기에는 친청 세력이었다. 을사늑약 체결 초기에 그는 한.......
- 8.15 광복절 기념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 모음 이지용 - 대한제국 외부대신으로 을사늑약 체결에 관여한 을사오적이자, 이후 일제로부터 작위까지 받은 친일 인물.
- 일제강점기 주요 친일 인물 18인 행적 매국 관료 계열 이완용 (을사오적) 이력: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 1905년 을사늑약, 1907년 정미7조약, 1910년 한일병합조약 체결을 주도한 대표적 매국 관료로, 일제로부터
- 의암류인석기념관 기억체크인 류인석 선생은 춘천 출신의 유학자이자 의병장으로, 을미사변과 을사늑약 이후 항일 의병운동을 이끌었으며 해외로 망명한 뒤에도 독립운동을 이어갔습니다.
1 페이지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