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

인물

윤치호(尹致昊, 1865년 1월 23일 ~ 1945년 12월 6일)는 조선, 대한제국의 개혁, 민권운동가, 문신이자 외교관, 언론인, 교육자, 한국의 정치가, 교육자, 사상가, 언론인, 종교가였다. 구한말에는 갑신정변으로 피신했다가 귀국, 독립협회 활동, 독립신문 발행인과 제2대 독립신문사(獨立新聞社) 사장 등으로 활동했으며 만민공동회의 최고 지도자로서 강연, 계몽활동과 민권운동과 민중의 참정권 요구 운동·개혁운동에 참여했고, 서재필이 강제추방된 이후 독립협회와 반청계몽운동 활동을 지도했다. 그러나 민중의 호응 미진과 정부 및 황국협회 등의 탄압으로 독립협회의 활동이 실패하고 민중 역시 그를 황제에게 불충하는 인물로 보자 실망을 느낀 그는 민중을 계몽의 대상에서 개조, 훈련의 대상으로 보며 시각을 바꾸어 실력 양성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관직에 투신하여 덕원감리사 겸 부윤, 삼화감리, 외무부 협판, 한성부 판윤 등을 거쳐 러시아 제국의 차르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관하고 귀국하면서 서구 문물을 통한 계몽, 변화를 확신한다. 이후 한영서원, 대성학교의 교장으로 활동하다 경술국치 뒤에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일제에 의해 투옥되었다.

출생지
조선 충청도 천안군 모산면 새말 (현 대한민국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
학력
미국 에모리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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