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근수
인물윤근수(尹根壽, 1537년 ~ 1616년 8월 17일)는 조선 중기의 문신(文臣)·시인·화가이며, 서인(西人)의 일원이다.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자고(子固), 호는 월정(月汀)·외암(畏菴),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영의정 윤두수의 동생이다. 1558년 과거 급제 후 승정원 주서, 춘추관 기사관, 연천군수 등을 지내다가 1563년 이량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으나 이듬해 윤원형, 심통원 등의 상소로 복직되었다. 그 뒤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고, 1575년의 을해당론으로 동인, 서인으로 분당될 때 이황에게서 수학한 동문들을 따르지 않고 서인(西人)이 되었다.
- 출생일
- 1537년
- 출생지
- 조선 한성부
- 학력
- 1558년 별시문과에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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