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순
인물박제순(朴齊純, 1858년 12월 7일 ~ 1916년 6월 20일)은 조선의 문신이자 외교관, 대한제국의 정치인, 외교관이다.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겸 대리집정공 등을 지낸 을사오적이다. 그는 과거 급제 후 외교관과 이조, 호조의 참의, 이조참판, 형조참판 등을 지냈으며, 충청도 관찰사 재직 중 동학 농민 운동이 발생, 당시 청나라, 일본군 외에 경군(京軍) 등과 함께 동학 농민군 진압에 협력하였다. 과거에 급제한 후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주사(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主事) 겸 기연해방군사마(畿沿海防軍司馬)가 되고 이후 여러 번 톈진을 다녀왔으며 부교리, 정언, 장령 등을 역임했다. 1893년에는 민씨 정권의 뜻에 따라 동학 농민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와 교섭하였고, 이듬해에는 충청도관찰사로 나가 직접 보은군에서 궐기하여 충청도로 확산된 동학 농민군을 진압하였다.
- 출생지
- 조선 경기도 용인군 수여면 상도촌(現 대한민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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