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고려)
인물고려 태조(高麗 太祖, 877년 2월 4일(음력 1월 14일, 율리우스력 1월 31일) ~ 943년 7월 9일(음력 5월 29일, 율리우스력 7월 4일) )는 후삼국 시대 태봉의 장군이자 고려를 건국한 고려의 초대 국왕 (재위 : 918년 7월 30일(음력 6월 15일, 율리우스력 7월 25일) ~ 943년 7월 9일(음력 5월 29일, 율리우스력 7월 4일))이다. 성은 왕(王), 휘는 건(建), 본관은 개성(開城), 자(字)는 약천(若天), 묘호(廟號)는 태조(太祖), 시호(諡號)는 응운원명광렬대정예덕장효위목인용신성대왕(應運元明光烈大定睿德章孝威穆仁勇神聖大王)이고 능호는 현릉(顯陵)이다. 송악(松嶽)의 호족 왕륭과 그 부인 한씨 사이에서 877년에 태어났으며, 896년에 궁예의 휘하에 들어가 그의 장수가 되었다. 그 후 충주와 청주 등의 충청도 지역들을 점령해 태봉의 세력권을 넓혔으며, 이후 후백제와의 교전에서 거듭 승리하여 전라도와 경상도 서부 지역에서 견훤의 군사를 여러 번 격파했는데, 903년 나주와 주변 지역들을 점령했으며, 906년 상주(尙州)의 사화진, 909년 진도 부근의 도서들과 나주를 재점령하였다. 이후 후백제의 배후를 위협하고, 후백제와 중국과의 뱃길을 차단하여 국력을 확장시켰다.
- 출생일
- (양력)
- 출생지
- 신라 한산주 송악
출처: 위키백과 · 더보기 →
블로그
- 논산 고려 태조 왕건의 어진이 모셔진 사찰 천호산 개태사 이번에 소개할 사찰은 논산의 개태사입니다. 논산 개태사는 1,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사찰이라고 하며, 무엇보다 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의 기백을 느낄수 있는 사찰로 태조 왕건이 후백제와 최후의 결전을 벌여 승리후 그 승리를 기념하고 부처님의 기호에 감사하기 위해 태조 19
- [고려후기/불교유물유적/불화] 아미타팔도보살도 / 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 아미타팔도보살도 / 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 ★ 아미타팔도보살도(阿彌陀八大菩薩圖) / 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高麗 太祖 曇無竭普薩 禮拜圖) : 세로 225m, 가로 130mm , 두께 10mm의 목판에 옺칠을 하고 금니(금가루)로 앞면에 아미타팔대보살도, 뒷면에 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를 그린 불화.
- 논산<여행> 천년고찰,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전승 기념으로 세운 사찰, 천호산 개태사 개태사는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고려전기 제1대 태조 왕건이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전승 기념으로 세운 사찰로, 후백제 신검의 항복을 받아낸 상징적 장소인 왕건의 숙영지에 건립되었다.
- 만화로 보는 고전산문 '왕수재취득용녀설' 줄거리 고려 태조 왕건 탄생 신화 고려 태조 왕건의 출생을 신화적으로 엮어낸 소설이기도 합니다. 한편, 『고소설』은 4편의 한문 단편과 1편의 가사를 수록한 작품집인데요. 줄거리 왕수재는 태조 왕건의 아버지예요. 그는 태어난 지 석 달이 지나지 않아 전.......
- 무봉산 만기사(평택) 고려 시대[942년(고려 태조 25년)]에 창건되어 보물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평택의 대표적인 전통 사찰이란다 태조(왕건)의 최측근 신하인 남대사(南大師)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 검사동(檢沙洞) 지명유래 - 대구광역시 동구 검사동 검사동(檢沙洞) 고려 태조 왕건이 공산전투에서 후백제 견훤에게 패하여 도주하다 금호강변 모래가 비단처럼 빛깔이 좋고 크기가 똑같다 하여 금사로 불리어지다가 검사로 변천되었다.
- 검사동(檢沙洞) 지명유래 - 대구광역시 동구 검사동 검사동(檢沙洞) 고려 태조 왕건이 공산전투에서 후백제 견훤에게 패하여 도주하다 금호강변 모래가 비단처럼 빛깔이 좋고 크기가 똑같다 하여 금사로 불리어지다가 검사로 변천되었다.
- 고려 태조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고려 태조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정답 2번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의 규범을 제시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은 후백제를 정벌하여 통일을 이룬 직후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들이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하였어요.
- 고려사(高麗史) 후비(后妃) 열전(列傳) 고려사 열전 번역문 『고려사』 권88, 열전1 후비(后妃) 태조(太祖) 후비 출처: 장달수의 한국학 카페 | 『고려사』 권88, 열전1 후비(后妃) 태조(太祖) 후비 - Daum 카페 ---------------------------------------------------------------------------------- 고려사 열전 번역문 고려사열전 태조
- 1354 충남논산 성주도씨종중문서 초기의 희귀 문서랍니다 태조 이성계의 여러 차례 관직 제안에도 끝까지 고려의 신하로 남고자 했던 도응의 지조가 담겨 있습니다. 고려 말과 조선 초의 관직명이 함께 적혀 있어 건국 직후 관료 제도의 변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입구에 배롱나무꽃이 멋드러지게 피어있습니다.
뉴스
- 임실 성수산 자연휴양림 휴가지 인기 고려 태조 왕건과 조선 태조 이성계의 건국 설화가 전해지는 이곳은 숲과 계곡, 물놀이장, 산림레포츠 등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 튀르키예 대통령의 기괴한 선물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고려 시대인 서기 942년의 일이다. 동아시아 북방의 유목 민족이 세운 나라 거란(契丹)이 고려에 접근했다. 하지만 당시 임금인 태조 왕건(877∼943)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거란 사신은 외딴 섬으로 유배를 보내고, 선물이라며 보낸 낙타들은 개성
- 자동차로 불과 20분 거리... 같은 돌이 이어준 천년의 인연 고려 문인 이규보도 '동국이상국집-개태사 조전원문'에서 개태사를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태조 진전에 제사를 올리던 국찰로 기록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고려 문인 이색의 <목은집>, 고려 말 승려 무외의 <용화회소>에도 이 거대한 석불의 존재가 기록돼 있다.
- 간지럼 타는 배롱나무꽃, 장군의 마음을 흔들다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 장군이 927년 공산 전투에서 태조 왕건을 대신해 목숨을 던진 자리로, 훗날 후손들이 옛 절터에 사당 표충사와 순절단, 충렬비를 세워 그 충절을 기려왔다.
- 보라꽃이 폭죽처럼 펑, 지장재 계곡에서 만난 꽃 성수산에서 이성계가 기도하고 조선을 창업하였다는 전설 이전에, 고려 태조 왕건의 설화가 있었다.
-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21세기 대군부인' 속 이 표현이 불편한 이유 고려(918~1392)는 474년간 군주 34명을, 조선(1392~1910)은 518년간 27명을 배출했다. 918년부터 1910년까지 등장한 군주 61명의 평균 재위기간은 16.3년이다 태조 이성계까지 연결되는 그런 설정을 깔고 있으므로, 이 드라마에서 존중돼야 할 것이 있다.

![사람을 밟아 죽인 코끼리? 태종이 내린 충격적인 판결! 🐘 [조선왕조실록외전 EP.3]](https://i.ytimg.com/vi/PIL07ecn-gc/hqdefault.jpg)

![[생방송 한국사] <strong>고려</strong> - 01. <strong>태조</strong> 왕건](https://i.ytimg.com/vi/fA9K1ZB2bZo/hqdefault.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