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 (고려)
인물선종 왕운(宣宗, 1049년 10월 15일 (음력 9월 10일), 율리우스력 10월 9일 ~ 1094년 6월 23일 (음력 5월 2일), 율리우스력 6월 17일)은 고려의 제13대 국왕(재위: 1083년 12월 12일 (음력 10월 24일), 율리우스력 12월 6일 ~ 1094년 6월 23일)이다. 휘는 운(運), 초명은 증(蒸) 또는 기(祈)이다. 자는 계천(繼天), 묘호는 선종(宣宗), 시호는 관인현순안성사효대왕(寬仁顯順安成思孝大王), 능호는 인릉(仁陵)이다. 문종과 인예태후(仁睿太后) 이씨(李氏)의 아들이다. 국원공에 책봉되었다가 친형 순종이 3개월만에 요절하여 왕위를 계승하였다.
- 출생일
- (양력)
- 출생지
- 고려 개경 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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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도사국장생석표ㅡ손잉내 고려 선종 2년(1085년)에 세워진 **보물 제74호 ‘양산 통도사 국장생 석표’**에 새겨진 이두식 지명 **‘손잉내(손잉천, 孫仍川)’**의 ‘손잉’은 바로 **‘솔다(좁다)’ 적기 위해 음이 비슷한 '손(孫)'을 빌려 쓴 것입니다. • 잉(仍): 우리말의 ㄹ 받침이나 어미를 표기하기 위해 이두에서 흔히 쓰던 글자입니다. • 즉, **‘손잉(孫仍)’**은 고려
- 구산선문(九山禪門) 신라 말기 부패해가는 귀족중심의 교종(敎宗)에 대항해 일어난 선종 사찰은 달마선법을 계승해 깊은 산속에 참선(參禪)을 중심으로 수행 도량을 일으켰다. 특히 신라 말, 고려 초에 흥기한 지방 호족의 지원을 받아 새로운 기풍인 선법을 획기적으로 진작시킨 아홉 사찰(구산선문)은 아래와 같다. 1.
- 송나라미술이 조선회화에 끼친 영향 일본이 선종(禪宗) 사찰과 선승들의 수묵화, 기물을 중심으로 남송의 사조를 수용했던 것과 달리, **조선은 왕실과 사대부 계층을 중심으로 북송의 장엄한 원체 산수화풍과 문인화 사상을 송나라 미술의 영향력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지점은 **조선 전기(15세기) 산수화의 성립**입니다. * **곽희화풍(郭熙畫風)의 정착:** 북송 대표 화가 곽희의 산수화 양식은 고려
- 나주 서성문 안 석등 羅州 西城門 石燈 국립나주박물관 팔각 기둥에 새겨진 대안 9년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고려 선종 10년(1093)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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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서성문 안 석등 羅州 西城門 石燈 국립나주박물관
팔각 기둥에 새겨진 대안 9년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고려 선종 10년(1093)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대동시선 10 이지저(1092, 선종 9~1145, 인종 23)는 고려 전기 예종, 인종 때의 문신이다.
- 고려 왕실은 왜 절 마당을 물바다로 만들었나? 회암사 보광전의 미스터리 고려 회암사 보광전이 유일무이하게 연지에 둘러쌓인 이유 - 연화장세계의 건축적 구현과 고려 회암사 보광전 수중 가람의 상징성 curatorsim 고려 말 선종 건축의 정수: 회암사 보광전의 미스터리와 연구의 단초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 이르는 전환기적 시점에 중창된 양주 회암사는 단순한 사찰의 범주를 넘어, 당대 동아시아 불교 문화와 왕실의 권위가 결합된
- [서포터즈] 세계문화유산을 향해! 회암사지 왕실축제 : 회암사지 왕실축제 홈페이지) 600년 전 조선의 시작, 이성계의 발자취를 따라 떠나는 시간여행, ‘회암사지 왕실축제’의 아홉 번째 이야기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습니다 회암사지는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왕실과 깊은 인연을 맺은 대표적인 선종 사찰 유적으로, 202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선정되며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공간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바탕으로
- 도갑사 (道岬寺) - 전남 문화유산자료 (2026.05.03.) 다만, 도갑사 입구에 고려 선종 7년(1090)에 만들어진 국장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세웠고 11세기 후반에 번성한 것으로 추측된다.
- 강진 무위사와 백운동 원림의 봄 무위사는 고려 초에는 선종 사찰로 유명하였으나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수륙사로서 유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