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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이 비어야 받아들일 수 있다 》 위 글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1681~1763)이 후배인 권영(權穎)을 전송하면서 써준 글로, 지식에 대한 지나친 욕심을 경계한 것입니다. 성호는 자신이 한때 학문을 널리 한답시고 잡설, 패기(稗記) 등을 가리지 않고 많이 얻는 데에 몰두하였다고 합니다.
- 운조루(雲鳥樓) 기록을 남기는 정신 ㅡ 백년百年 동안의 日記 06. 선정善政을 베푸는 정신 ㅡ 낙안군수 07. 건축을 사랑한 정신 ㅡ 수원화성水原華城 08. 인권존중人權尊重의 정신 - 하인들 해방 [柳 應敎 : 전북대 명예교수 공박. 시인. 柳 爾胄의 8세손임.......
- 오래 못 가서 몸이 죽거나 자손이 요절하고 만다 강항(姜沆‧1567~1618)이 벗 권제(權霽)의 청몽당(淸夢堂)에 놀러 갔다가, 기문(記文) 부탁을 받았다. 청몽(淸夢)의 뜻을 묻자 권제가 말했다.
- 越中圖월중도。 肅廟는 端宗과 그 忠節臣들을 復權시켰고, 英廟와 正廟는 그들의 行跡과 관련이있는 遺蹟을 整備하고 이에 관한 記錄을 남겼다。 光廟는 姪子를 죽게 한 張本人이었지만 端宗을 復權시키려다 慘殺된 死六臣들이 후일에 忠臣이 될 것임을 認定했다。
- 이상좌(李上佐) – 송하보월도(松下步月圖)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稗官雜記)'에 의하면 그는 본래 어느 선비의 가노(家奴)였으나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뛰어나 중종의 특명으로 도화서(圖畵署) 화원이 되었다고 한다.
- 운남토사(雲南土司) 녹천·평면(麓川·平緬) – 악봉이 다사녕을 독살함 其記室岳鳳者, 江西 撫州人, 黠而多智, 商於隴川, 士寧信任之, 妻以妹. 鳳曲媚士寧, 陰奪其權, 與三宣六慰各土舍罕拔等歃血盟, 誘士寧往擺古, 歸附緬酋.
- 배운 자와 가진 자 배운 자와 가진 자 이시환 먼 옛날, 시경(詩經)과 예기(禮記)를 읽은 선비 두 사람이 도굴(盜掘)에 나섰다. 그들이 택한 무덤은 살아생전 베풀 줄 모르는, 권세(權勢)가 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젊은 선비[小儒]가 무덤 안으로 들어갔고, 늙은 선비[大儒]는 무덤 밖에서 망을 보았다.
- 讀鄧騭傳記後感(독등즐전기후감) 후한 등즐 전기를 읽고-자음 讀鄧騭傳記後感(독등즐전기후감) 후한 등즐 전기를 읽고-자음 敎子皆遵法度行 교자개준법도행 檢宗愼族保門淸 검종신족보문청 權高尤戒驕奢氣 권고우계교사기 闔戶無聲世自寧 합호무성세자녕 “자손
- 신잠@ 어숙권(魚叔權)은 『패관잡기(稗官雜記)』 2권에서 “묵죽(墨竹.......
- 사실류원 1~10 據序首自題,稱左朝請大夫權發遣吉州軍州事。而《江西通志》亦未載其履貫,蓋已不可考矣。其書成於紹興十五年,以宋代朝野事迹見於諸家記錄者甚多,而畔散不屬,難於稽考,因為選擇類次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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