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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전(匈奴傳)74 : 호한야선우와 질지선우가 한나라에 입조하니 특별 예우
호한야선우와 질지선우가 한나라에 입조하니 특별히 예우하고 재물을 풍부히 사여하였고 뒤에 사신도 입조함 明年, 呼韓邪單于款五原塞, 願朝三年正月. 漢遣車騎都尉韓昌迎, 發過所七郡, 郡二千騎, 爲陳道上. 單于正月朝天子于甘泉宮, 漢寵以殊禮, 位在諸侯王上, 贊謁稱臣而不名. 賜以冠帶衣裳, 黃金璽盭綬
blog.naver.com · 202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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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전(匈奴傳)45 : 저제후선우 매우 교만.거만해짐
明年, 浞野侯破奴得亡歸漢. 저제후선우가 처음 즉위하였을 때 한나라가 습격할까 걱정하여 한나라 사신 가운데 [흉노에] 항복하지 않은 자들을 모두 돌려보내 주었다.
blog.naver.com · 2026.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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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전(匈奴傳)72 : 도기선우 자살, 질지선우가 윤진,호한야 아울러 격파
呼韓邪單于左大將烏厲屈與父呼遫累烏厲溫敦, 皆見匈奴亂, 率其衆數萬人南降漢. 封烏厲屈爲新城侯, 烏厲溫敦爲義陽侯.
blog.naver.com · 202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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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전(匈奴傳)78 : 후응(侯應)이 9가지 이유를 들며 반대함
上問狀, 應: 「周 秦以來, 匈奴暴桀, 寇侵邊境, 漢興, 尤被其害. 臣聞北邊塞至遼東, 外有陰山, 東西千餘里, 草木茂盛, 多禽獸, 本冒頓.......
blog.naver.com · 202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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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전(匈奴傳)77 : 질지선우가 강거와 맹약을 맺었으나 강거에 이르러 죽임을 당함
會康居王數爲烏孫所困, 與諸翕侯計, 以爲匈奴大國, 烏孫素服屬之, 今郅支單于困阸在外, 可迎置東邊, 使合兵取烏孫以立之, 長無匈奴憂矣. 卽使使至堅昆通語郅支.
blog.naver.com · 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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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전(匈奴傳)51 : 한나라가 흉노와 준계산에서 싸운뒤
匈奴使大將與李陵將三萬餘騎追漢軍, 至浚稽山合, 轉戰九日, 漢兵陷陳卻敵, 殺傷虜甚衆. 至蒲奴水, 虜不利, 還去. 어사대부 [상구성]의 군대가 [목적지에] 도착하여 추사경(追邪徑)까지 갔어도 顔師古의 설명처럼 옆길까지 수색하였지만 匈奴를 보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王先謙은 斜를 邪로 고치고
blog.naver.com · 2026.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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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漢書 卷94 匈奴傳 第64흉노전(匈奴傳)41 : 한나라가 성채와 망루를 쌓고 주둔시킴
한나라가 성채와 망루를 쌓고 한열(韓說), 위항(衛伉), 노박덕(路博德)을 근방에 주둔시킴 句黎湖單于立, 漢使光祿徐自爲出五原塞數百里, 遠者千里, 築城障列亭至盧朐, 而使游擊將軍韓說·長平侯衛伉屯其旁, 使强弩都尉路博德築居延澤上. 구려호선우가 즉위하자 한나라에서는 광록[훈](光祿勳) 서자위(徐
blog.naver.com · 2026.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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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전(匈奴傳)76 : 호한야선우, 북쪽 선우정(單于庭)으로 돌아감
漢不知吉音問, 而匈奴降者言聞甌脫皆殺之. 呼韓邪單于使來, 漢輒簿責之甚急. 明年, 漢遣車騎都尉韓昌·光祿大夫張猛送呼韓邪單于侍子, 求問吉等, 因赦其罪, 勿令自疑. 恐北去後難約束, 昌·猛卽與爲盟約: 「自今以來, 漢與匈奴合爲一家, 世世毋得相詐相攻. 有竊盜者, 相報, 行其誅, 償其; 有寇, 發兵相助. 漢與匈奴敢先背約者, 受天不祥.
blog.naver.com · 202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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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전(匈奴傳)62 : 오손 군대 요청, 한나라 다섯장군 보냄
오손이 군대를 내어주기를 요청하자 한나라가 다섯장군을 보내고 서역의 군사를 일으킴 匈奴繇是恐, 不能出兵. 卽使使之烏孫, 求欲得漢公主. 擊烏孫, 取車延·惡師地. 昭帝崩, 宣帝卽位, 烏孫昆彌復上書, 言 「連爲匈奴所侵削, 昆彌願發國半精兵人馬五萬匹, 盡力擊匈奴, 唯天子出兵, 哀救公主!」
blog.naver.com · 202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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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전(匈奴傳)81 : 호한야의 뒤를 이어 조도막고(雕陶莫車)가 즉위함
呼韓邪病且死, 欲立且莫車, 其母顓渠閼氏: 「匈奴亂十餘年, 不絶如髮, 賴蒙漢力, 故得復安. 今平定未久, 人民創艾戰鬪, 且莫車年少, 百姓未附, 恐復危國.
blog.naver.com · 2026.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