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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제비츠가 말한 전쟁[임용한의 전쟁사]〈437〉
전쟁의 잔인함을 혐오한다고 해서 전쟁의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고 했다. 인간과 인간의 싸움은 적대적인 감정과 의도로 이뤄져 있다. 문명화된 민족 간 전쟁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이를 양 정부의 지성적인 행동으로 환원한다거나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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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파병의 역사[임용한의 전쟁사]〈433〉
1353년 중국 장쑤성의 소금 장수였던 장사성이 원나라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다. 장사성은 전성기에 쑤저우를 함락하고 오왕(吳王)을 칭할 정도로 강대했지만, 원나라뿐 아니라 백련교도를 끼고 반란을 일으킨 주원장과도 대립하다가 멸망했다. 그는 실패했지만 장사성의 반란은 원나라 말기에 발생
- 민정과 군정[임용한의 전쟁사]〈429〉 675년 어느 날, 신라 아달성의 태수가 주민들에게 ‘모두 성 밖으로 나가 마를 심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대목은 삼국시대에 공동 노동으로 경작해 생산물을 국가에 바치거나 공용으로 사용하는 제도가 있었다는 증거로 인용된다. 문제는 이곳이 인근에 말갈족이 주둔하는 접경 지역이었다는 것
- 1950년의 무더위[임용한의 전쟁사]〈428〉 나는 학생 때부터 답사를 좋아했다. 대학원 진학 준비로 바빴던 학부 4학년 때도 정규 답사를 따라갔다. 그 덕에 노는 걸 좋아해서 사학과에 왔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현장에 가면 기록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많은 것이 보인다. 전적지(戰跡地)의 경우는 더 절실하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 지피지기의 방법[임용한의 전쟁사]〈426〉 한국 방산과 무기들이 세계적인 이목을 모으고 있다. 처음에는 감격하더니 순식간에 자부심 과잉이 됐는지 우리 전차, 우리 전투기가 세계 최고라는 영상이나 글이 난무한다. 무기의 특성과 성능을 논할 때는 범용성과 지역성을 따져봐야 한다. 공격용이냐 방어용이냐,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성능 평
- 둘리틀 공습의 교훈[임용한의 전쟁사]〈427〉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 4월 18일, 미국 공군의 주력기였던 B-25 폭격기 16대가 일본 주요 도시의 하늘에 갑자기 출현해 폭탄을 투하했다. 일본인 50명이 사망하고 400여 명이 다쳤다. 이 공습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에 대한 미국의 보복이라기보다는 미국민의 사기 진작을 위해
- 퇴로 없는 전쟁[임용한의 전쟁사]〈425〉 두 국가가 퇴로 없는 전쟁에 맞물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지상 전선에 큰 변화 없이 서로의 후방과 민간 지역을 폭격하고 있다. 전쟁 시작 당시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다. 장거리 폭격 능력이 부족한 우크라이나 공군이 광활한 러시아 영토를 타격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드론과 첨단
- 정의와 관용[임용한의 전쟁사]〈423〉 중국이 처음 개혁개방을 시작하고 문화혁명을 비판하는 영화와 소설이 외부 세계에 공개될 때였다. 한 대학 학생회에서 문화혁명에 대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당연히 비판 일색이었다. 그때 동양사 박사과정에 있던 한 분이 강단에 오르더니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요즘 돌아다니는 문
- 실전 같은 훈련의 힘[임용한의 전쟁사]〈424〉 6·25전쟁 당시 미국 해병대는 상당수가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자인 예비역 해병들을 보충병으로 받았다. 참전자라고 다 전투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 중 즉시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이의 자격 요건은 예비군 요원으로 2년간 복무했고, 하계입영훈련 1차와 72차 훈련을 받은 병
- 회의는 춤춘다[임용한의 전쟁사]〈421〉 유럽을 집어삼켰던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1814년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 영국은 빈에서 흐트러진 질서를 재건하기 위한 회담을 열었다. 하지만 이들의 공감대는 나폴레옹 몰락 하나뿐이었다. 그다음 세계에 대해서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회의는 파티와 보여주기 행사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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